우주 항공기 구조설계

스텔스 전폭기 F-117 Night Hawk 개발 비사: II DESIGN & DEVELOPMENT

coding art 2025. 6.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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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블로그 내용은 저명한 항공 전문가이자 사진작가이며, 록히드 블랙버드 A-12, SR-71, YF-12A, M-12, F-117 스텔스 전투기, 그리고 고전적인 맥도넬 F-15 이글 등 유명 항공기에 대한 수많은 저서를 집필한 작가인 폴 F. 크릭모어의 기사를 번역한 내용이다. 그의 탁월한 기록은 블랙버드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놀라운 프로그램들의 역사, 유산, 그리고 지식을 기록하는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기사의 번역을  위해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 포기하고 직접 변역을 시도하였다. 다소 길이가 긴 블로그 글이 시리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베트남 전쟁 중 미국이 치른 공중전과 1973년 소위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입은 손실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현대식 방공 시스템을 무력화할 만큼 충분히 낮은 RCS를 가진 유인 항공기 개발 개념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1974년 DARPA 전술기술국(TTO)의 켄 퍼코는 노스럽, 맥도넬 더글러스, 제너럴 다이내믹스, 페어차일드, 그루먼에 프로젝트 하비(James Stewart 주연의 옛 영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비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3미터짜리 토끼가 등장하는)라는 코드명으로 제안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제안서는 두 가지 고려 사항을 다루었다. 첫째, 항공기가 작전상 유용한 거리에서 본질적으로 탐지 불가능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그니처 임계값을 달성해야 할까요? 둘째, 관련 회사들이 필요한 저피탐 항공기를 설계하고 생산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는가?

 

페어차일드와 그루먼은 참여 요청을 거절했고,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전자 대응책의 지속적인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맥도넬 더글러스와 노스롭의 제안은 문제에 대한 이해와 신호 강도를 낮춘 저피탐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 역량을 모두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는 1974년 말 각각 약 1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휴즈 항공기 회사의 레이더 전문가들도 참여했는데, 이들의 역할은 적절한 RCS 임계값을 파악하고 검증하는 것이었다. 이 초기 단계에서는 연구가 당연히 "기밀"로 분류되었다.

 

빌 엘스너는 이 프로그램의 주요 미 공군 기술 전문가였으며, 1975년 초 맥도넬 더글러스는 작전상 이점을 가져올 수 있는 RCS 임계값을 확인했다. 봄에 휴즈사가 이를 확인했고, DARPA는 이를 프로그램의 목표로 설정했다. DARPA는 참가자들에게 이를 달성할 방법을 찾도록 과제를 내주었다. 록히드는 DARPA가 처음 접촉했던 다섯 회사 중 하나가 아니었다. 거의 10년 동안 전투기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곧 바뀌게 되었다. 펜타곤과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AFB)에서 연락망을 구축하던 중, 록히드 캘리포니아 회사의 과학 및 엔지니어링 담당 이사인 에드 마틴은 이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스컹크 웍스(Skunk Works)의 전설적인 사장인 클래런스 L. "켈리" 존슨의 부회장이었던 벤 리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은 존슨에게 브리핑을 했고, 존슨은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스컹크 웍스가 DARPA와 이전 A-12 및 D-21 드론 프로그램의 저피탐(Low Obsevability) 특성을 논의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서한을 받았다.

 

리치와 마틴은 이 데이터를 켄 퍼코와 DARPA 국장인 조지 하일마이어 박사에게 제시하고 공식적으로 경쟁 참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하일마이어는 이미 10만 달러 규모의 두 건의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더 이상 현금이 없다고 설명했다. 리치는 협상 능력을 발휘하여 DARPA 국장을 설득하여 정부 계약 없이 록히드가 경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가져왔다. 스컹크 웍스 팀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이미 제공된 기술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혁신적인 항공기 개발로 이어질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스컹크 웍스 팀에서 데니스 오버홀저는 어느 날 상사였던 딕 셰러가 "레이더에 보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던 일을 떠올렸다. 오버홀저는 "간단합니다. 평평한 표면으로 만들고, 그 평평한 표면을 기울여 가장자리 모서리를 레이더 시야각에서 벗어나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에너지가 레이더에서 반사되어 반사되는 에너지의 크기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의 틀은 오버홀저가 수년 전 당시 상사였던 빌 슈뢰더와 나눴던 논의에서 비롯되었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슈뢰더는 존슨에게 분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되었고, 오버홀저를 훈련시켰다. 광학 산란의 수학과 물리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적절한 방향으로 배치된 최소 개수의 평판 패널로 구성된 형태를 활용하면 탐지 가능한 신호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슈뢰더는 삼각형 평면 패널의 반사를 분석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학 방정식을 개발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RCS와 관련된 계산에 적용될 수 있다.

 

텍사스 출생인 오버홀저는 오레곤 주립대에서 전기공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보잉에 입사하여 미사일 프로젝트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 후 스컹크 워크스의 인재 선발에 지원하여 15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록히드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2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Facets 모델을 대상으로 5주에 걸쳐 레이더파 반사파를 계산할 수 있는 Echo 1 이라는 컴퓨터 코드를 개발하게 된다.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의 틀은 수년 전 오버홀저가 당시 상사였던 빌 슈뢰더와 나누었던 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슈뢰더는 존슨에게 분석 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되었고, 오버홀저를 훈련시켰다. 광학 산란의 수학과 물리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적절한 방향으로 배치된 최소 개수의 평판으로 구성된 형태를 활용하면 감지 가능한 signiture 값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슈뢰더는 삼각형 평판의 반사를 분석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학 방정식 즉 Facets 모델을 개발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RCS 관련 계산에 적용될 수 있다. 오버홀저의 의견을 바탕으로 셰러는 면 처리된 델타 날개를 기반으로 예비적인 저 RCS 형태를 도출했다. 4월에는 빌 슈뢰더가 팀에 합류하여 RCS 방정식에 대한 해법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팀은 궁극적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케네스 왓슨은 수석 항공기 설계자로 임명되어 셰러와 오버홀서가 설계 중인 "쉘" 내부에 모든 시스템을 배치하는 즉 레이아웃 업무를 담당했다.

 

슈뢰더의 수학적 계산이 가능해지자, 오버홀저와 두 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그의 팀은 이를 사용하여 딕 셰러가 추천한 예비 설계 제출물의 RCS를 평가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오버홀저와 그의 팀은 밤낮으로 작업하여 단 5주 만에 Echo 1이라는 RCS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러나 테스트가 계속되면서 회절 현상으로 인해 Echo 1에서 계산된 에지 기여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마도 이 기법은 ray tracing 알고리듬과 관련성이 높은 듯해 보인다.

 

놀랍게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소련 과학자가 제공했다. 스컹크 웍스 팀은 표트르 우핌체프(모스크바 무선공학 연구소 수석 과학자)가 작성한 기밀 해제된 기술 논문에 실린 "회절의 물리적 이론에서 에지 파동의 방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논문은 1971년 공군 시스템 사령부 해외 기술부에서 번역되었다. 오버홀서는 자신의 이론의 요소들을 개선된 버전의 에코 1 프로그램에 통합하고, 이를 통해 20개가 넘는 설계를 수학적으로 평가하여 RCS가 가장 작은 설계를 찾아냈다. 면 처리된 델타 날개 설계는 스컹크 웍스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기역학 분야의 일부에서는 이 형태를 "희망 없는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Facets  모델은 기체 표면이 온통 각이 져 기하학적으로 불연속한 곳이 너무 많아 기체 표면에서 공기 흐름의 속도라든지 gradient  값을 계산할 수가 없어 경계층류(Boundary Layer) 해석이 아예 불가능하므로 공기역학 전문가의 역할은 전혀 없는 듯하다.

 

이 “호플리스 다이아몬드”의 3분의 1 크기 목조 축소 모형 두 개가 제작되었다. 하나는 풍동 시험에 공기역학 전문가들이 사용했다. 어쨌든 기체 모양이 양력을 받을 수 있는 동체 형상이므로 항공기 전체적으로 양력 발생은 가능해 보이며 양항비 측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도성 표면을 만들기 위해 금속 호일로 코팅하여 록히드의 무반향실에서 RCS 값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첫 번째 시험은 1975년 6월에 실시되었으며, RCS "스파이크"가 에코 1에서 예측한 값과 정확히 일치함을 보였다. 이후 모형은 향상된 성능을 자랑하는 그레이 뷰트 레이더 시험장으로 옮겨져 더 낮은 RCS 값을 측정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러한 시험 결과는 에코 1의 예측과 잘 일치하여 컴퓨터 프로그램과 면 처리된 설계 개념 모두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

 

기체의 양항비(Lift-to-Drag Ratio)를 개선하기 위해 엔진 흡입구 바깥쪽 부분을 얇게 만들어 날개 모양을 만들었다. 이 날개는 결국 바깥쪽으로 확장되어 원래의 다이아몬드 모양에서 노치된 델타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즉 날개 없이 다이아몬드 동체만으로는 양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뒷전 스윕은 48도로 증가하여 뒷전과 관련된 시그니처 스파이크가 정면 섹터 밖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기수 방향 감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쪽으로 기울어진 꼬리 표면도 추가되었다.
록히드는 DARPA에 두 가지 제안서를 제출했다. 하나는 Hopeless Diamond의 예측 및 측정 시그니처 데이터를 포함했고, 다른 하나는 비행 가능한 형태의 항공기에 대한 예측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는 DARPA가 세 경쟁사에 훗날 실험 생존 테스트베드(Experimental Survivable Testbed, XST)로 알려지게 될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한 데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1975년 늦여름에 비공식적으로 요청되었으며 8월이나 9월에 답변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 명시된 주요 목표는 이전 1974/1975년 지침에 명시된 목표와 동일했다.

 

노스롭의 XST도 록히드와 외관이 유사했다. 설계는 GENSCAT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개발되었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광학 물리학과 관련된 수학적 방정식에서 유래했다. 록히드와 마찬가지로 노스롭은 컴퓨터 모델링과
캘리포니아 팜데일 인근의 그레이 뷰트 시험장을 활용하여 설계를 시험하고 평가했다. 1975년 여름까지 노스롭 역시 설계가 이전에 설정한 RCS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다.

 

경쟁에서 RCS 임계값이 어느 정도일지 최초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맥도넬 더글러스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항공기를 설계할 수 없었다. 록히드와 노스롭 모두 RCS 결과가 거의 혁명적인 수준에 가까워지자, 켄 퍼코는 DARPA 내부 회의를 소집하여 프로그램의 향후 방향을 결정했다. 프로그램을 더욱 경쟁 발전시켜 두 단계로 구성된 본격적인 비행 시험 시연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1단계는 대규모 모델의 지상 RCS 평가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이후, 한 계약업체가 선정되어 2단계, 즉 두 대의 시범 기체 제작 및 비행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XST 프로그램의 예상 비용은 3,600만 달러였으며, 이는 후발 주자인 미 공군과 DARPA가 부담하고 분담할 예정이었다. DARPA는 약간 더 많은 금액을 기여하여 프로그램 관리 권한을 유지했다. 1975년 8월까지 자금 조달이 완료되었고, 11월 1일 록히드 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은 XST 프로그램 1단계를 수행하기 위해 각각 15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림은 록히드의 축소 모델을 사용하는 무향 쳄버 실험실이다. 음향 측정을 위한 무향실과 유사한데 아마도 벽면에 특수 처리를 하여 레이더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두 회사는 각각 4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는 경쟁 초기 단계를 완료하는 데 소요된 시간이었다. 이 단계에서 실물 크기의 목조 시험 모형 제작도 포함되었다. 이 모형들은 뉴멕시코주 화이트샌즈에 위치한 공군의 레이더 표적 산란(RATSCAT) 시험장에서 평가될 예정이었다. 두 참가 회사가 달성한 RCS 결과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 이미 분명했으며, 단지 파일런(미사일을 메다는 지지부)에서 반사되는 신호가 시험 모형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새로운 저치탐 파일런을 개발해야 했다.

 

록히드는 3월 시험을 위해 모델을 트럭으로 RATSCAT로 운반하였다. 시험기간 동안 경쟁 계약업체와 해당 모델들은 서로 격리되어 임시 숙소에 머물렀으며, 각사는 시험장에 컨닝을 할 수 없도록 독립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초, 록히드는 1단계 경쟁에서 공식적으로 승리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러나 노스롭도 달성한 뛰어난 성과로 인해 DARPA는 팀이 잔류할 것을 촉구했다. 그 직후 DARPA는 실험용 전쟁터 감시 항공기(BSAX)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는 결국 태싯 블루(Tacit Blue)라는 매우 성공적인 비행 시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이는 이후 B-2 폭격기 아마도 B-2 SPIRIT 프로그램에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러한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 날의 이란 표르도와 나탄즈의  핵시설 파괴를 위해 동원된 B-2 스텔스 폭격기가 1970년대 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현 2025년 기준 곧 퇴역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기에 막대한 개발비 투자가 아깝기도 하거니와 그냥 버리기는 그렇고 한 번이라도 쓰고 버리자는 막판 재고털이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다음 버전은 더욱 무지막지한 놈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어서 록히드 시제 1호기 "Have Blue" 편을 번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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